아이와 여행할 때 일정을 너무 많이 잡았다가 실패했던 경험
아이와 여행을 다니다 보면 여행 전에는 늘 욕심이 생깁니다.
검색하다 보면 가고 싶은 장소가 계속 늘어나고, 멀리까지 갔으니 한 곳이라도 더 보고 와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생깁니다.
저도 처음 가족여행을 다닐 때는 하루 일정에 관광지를 여러 곳 넣는 편이었습니다.
아침에 한 곳, 점심 먹고 한 곳, 오후에 두 곳 정도를 더 넣고 시간이 남으면 근처에 있는 곳까지 들러보려고 했습니다.
계획을 짤 때만 해도 꽤 알찬 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와 움직여보니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 장소에서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기도 했고, 갑자기 화장실을 찾기도 했고, 밥을 먹은 뒤 아이가 피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처음에는 계획한 장소를 모두 가려고 했습니다.
결국 어느 여행에서는 오후가 되자 아이가 지치기 시작했고, 저 역시 마음이 급해지면서 여행 분위기까지 좋지 않아졌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부터 가족여행 일정을 만드는 방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1. 많이 보면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예전에는 여행 전날이면 휴대전화를 들고 몇 시간씩 여행지를 찾아봤습니다.
'아이와 가볼 만한 곳'
'가족여행 필수코스'
'하루에 꼭 가봐야 할 곳'
이런 검색을 하다 보면 추천 장소가 정말 많이 나옵니다.
하나씩 저장하다 보면 처음에는 두 곳이었던 일정이 네 곳, 다섯 곳으로 늘어났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지도에서 가까워 보이면
"여기까지 갔는데 이곳도 들러보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지도에서 가까워 보여도 실제 여행에서는 이동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주차할 곳을 찾는 시간도 필요했고, 아이와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간식을 먹거나 잠깐 쉬는 시간도 필요했습니다.
관광지 입구까지 걷는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모두 빼고 단순히 이동거리만 계산했기 때문에 일정이 계속 밀렸습니다.
오전에는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오후였습니다.
아이 걸음이 느려지고 자꾸 앉고 싶다고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음 관광지 입장시간을 생각하면서 계속 서두르게 됐습니다.
"조금만 빨리 가자."
"이것만 보고 이동하자."
"다음 장소도 가야 해."
여행을 즐기러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족 모두가 일정을 따라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여행지를 많이 본 것은 맞았지만 편하고 즐거웠던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행지를 많이 방문하는 것과 좋은 가족여행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 아이가 지치는 신호를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아이와 여행할 때는 어른보다 체력이 빨리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것을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걷는 속도가 느려져도 단순히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수가 줄어들거나 차에 타자마자 조용해져도 조금 피곤한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여행을 다녀보니 아이가 보내는 신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평소에는 잘 걷던 아이가 자꾸 앉으려고 하거나,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먹고 싶은 것을 계속 찾거나,
사진을 찍자고 해도 싫다고 하면 이미 많이 피곤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상황에서도 마지막 장소 하나만 더 가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관광지에 도착해도 아이가 재미있게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도 아이를 달래느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가 피곤해 보이면 일정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계획한 장소를 포기하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한 곳을 포기하고 카페나 공원에서 쉬어보니 오히려 가족 모두의 표정이 편해졌습니다.
아이도 간식을 먹고 조금 쉬면 다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 역시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 여행계획을 세울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가족의 컨디션이 됐습니다.
3. 지금은 하루에 꼭 가고 싶은 곳만 정합니다
지금은 여행일정을 예전처럼 꽉 채우지 않습니다.
먼저 가족끼리 꼭 가보고 싶은 장소를 한두 곳 정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갈 수 있는 후보지를 한 곳 정도만 추가합니다.
예를 들어 오전에는 박물관을 방문하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에는 야외 여행지 한 곳을 둘러보는 식입니다.
아이가 충분히 잘 걷고 시간이 남는다면 주변 장소를 하나 더 방문합니다.
반대로 피곤해하면 과감하게 집으로 돌아오거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이렇게 바꾸고 나니 여행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여행 중에 시계를 확인하는 횟수가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다음 장소 입장시간이나 이동시간을 계속 확인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재미있어하면 조금 더 머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천천히 찍고, 배가 고프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식사를 합니다.
일정표에 가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상태에 맞춰 일정을 바꾸는 방식이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느끼는 피로도도 많이 줄었습니다.
여행 일정에 일부러 빈 시간을 넣습니다
요즘 여행계획을 세울 때 제가 꼭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정 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넣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관광지에서 나와 차에 타기 전에 잠깐 쉬기도 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아이와 간식을 먹기도 합니다.
이 시간이 있으면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 훨씬 여유가 생깁니다.
예상보다 관광지 관람이 오래 걸렸더라도 일정 전체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한다면 저는 하루 일정의 20~30% 정도는 비워두는 편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 시간을 꼭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여행 중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계획한 곳을 못 가도 여행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여행을 다녀온 뒤 계획했던 장소를 하나 못 가면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음에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왜 시간을 잘못 계산했을까'
라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아이와 가족 모두가 즐거웠다면 계획한 장소를 한두 곳 못 가도 괜찮습니다.
여행지는 다음에 다시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힘든 상태에서 억지로 다녀온 장소는 가족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여행을 조금 일찍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라고 물어보는 시간이 더 기억에 남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대답을 들어보면 부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와 전혀 다른 순간을 가장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좋은 여행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면서 배운 가장 큰 점
아이와 가족여행을 여러 번 다녀보면서 여행계획은 점점 단순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일정표가 빽빽해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빈 시간이 있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면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피곤해하면 바로 쉴 수 있고,
날씨가 달라지면 일정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여행이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의 상황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계획이었습니다.
아이와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처음부터 하루 일정을 가득 채우지 않아도 좋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곳 한두 곳만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선택해보세요.
저도 일정을 줄이고 난 뒤부터 가족여행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그날 몇 곳을 다녀왔는지'가 아니라
그곳에서 가족과 얼마나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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